한국의 기독교인들과 전 세계인의 기독교인이라면, 유명한 조용기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미국에서는 조용기 목사님의 저서와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미국에서 유학생 시절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조용기 목사님'에 대해 아냐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가본 적이 있나고 여러 미국 목사님과 미국인 신앙인들에게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그만큼 조용이 목사님은 해외에서 어느 한국 목사님들보다 제일 잘 알려진 목사님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남미나 다른 국가에서도 여러 힐링 집회 등을 많이 하셔서, 다른 나라에서 대통령들이 집접 마중을 나오고 해외 대통령 못지않은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어지러운 세대에 한국의 별, 목사님이 타계하셔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분은 한국에서 어려가지로 소녀소녀 가장 후원 및 사회 후원 업적을 남기기도 하셨습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 목사님을 모르신다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생애와 업적
조용기 목사님, David Yong-gi Cho, 1936년 2월 14일~2021년 9월 14일사셨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목사님이십니다. 세계 최대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는 1936년 2월 14일 대한민국 경상남도 울산군에 불교 집안이던 아버지의 5남 4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7세이던 부산공업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인하여 죽음을 눈앞에 두다가 고향 울산 진장에 내려가 휴양을 하며 부산으로 통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고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던 당시 병문안 온 누나의 친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1956년 서울로 올라와서 순복음 신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였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만난 최자실 목사의 딸 김성혜와 1965년 3월 1일 결혼하였고,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1956년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같은 학교에서 만난 최자실(1915~89) 전도사와 함께 신자 5명으로 공동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천막교회 신자가 불어나자 1962년 서울 서대문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신인 순복음중앙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인 수가 급증하자 1968년 당시 모래벌판이던 서울 여의도의 3천여 평 부지에 교회를 세워 1973년 입당했습니다.
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도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9년 신자 수 10만명, 1981년 20만 명, 1984년 40만 명, 1992년 70만 명을 잇따라 돌파하며 세계 최대 교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교인 약 80만 명에 이르는, 세계 개신교 최대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당회장 목사로 목회했습니다.
일본어, 영어에 능숙하시며, 해외에서의 오순절교회 선교활동을 통해 개신교 선교에 공헌했습니다.
2008년 5월, 당회장 목사로서의 임기를 마쳤고, 이후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목사로서 활동하였습니다. 병세가 많이 악화되어 발음이 어눌하고, 고령인지라 매주 기력이 쇠하는 게 뚜렷이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세계 최대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 조용기 목사가향년 86세 14일 오전 7시 13분께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하셨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평가
6.25전쟁 이후 황폐해진 땅에서, 조용기 목사님은 예수를 믿으면 영혼 구원뿐 아니라 부자 되는 물질 축복과 건강 축복까지 받는다는 ‘3박자 구원론’으로 세속적 욕구에 부응하며 엄청난 호응을 얻어냈습니다. 그 당시에는 폭발적인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1965년 여러 차례 강단에서 쓰러지는 등 병으로 인해 혼자서 목회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울 지역을 20개 구역으로 분할한 후 평신도 구역장으로 임명하고 교육시켜 구역 모임을 이끌게 했습니다. 이런 교역장 분화가 신자 수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3박자 구원론이 성서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조용기 목사님은 주로 병자를 치유하는 부흥회를 통해 교인을 모였지만 본인은 젊은 날부터 지속적으로 병고 속에서 살았고, 2006년엔 파킨슨병 진단까지 받으면서, 열심히 성령 치유를 하셨습니다.
상당수 대형교회 설립자들이 담임직을 자식에게 세습해주는 상황에서 당회장을 이영훈 목사에게 물려줌으로써 호평을 받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사랑의 교회도 후임자가 문제가 많이 되었지만, 조용기 목사님은 후계자 양성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같은 시기 대형교회를 일으킨 많은 목사들과 달리 교회를 가족에게 물려주지 않고 이영훈 목사에게 물려주었다.
2020년 7월 뇌출혈로 쓰러져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 측에서는 가벼운 뇌출혈이라고 밝혔습니다그러나 1년여에 걸친 입원 치료 끝에 2021년 9월 14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순복음교회가 소속된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는 오순절교회 계통으로 방언 등 성령 체험을 강조하는 교단입니다. 오순절교회는 미국 중부에서 시작하여 미국과 전 세계와 현재 개신교 제1교파로 아프리카 개신교 국가들 중 다수가 오순절교회를 믿습니다.
오순절교회는 20세기 초반부터 미국의 보수적인 교단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조용기 목사가 기복신앙의 원조가 아니라고 합니다.
명설교 중 하나라고 꼽히는 1981년 겉옷을 벗어버리고를 보면 45세의 조용기 목사 전성기의 유머러스함과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습니다. 원고를 거의 보지 않고 즉석 스피치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그의 설교는 호소력이 상당했고 이것이 결국 순복음교회의 교세를 키우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설교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서도 매우 쉽게 볼 수 있다.
■언론의 최근 보도한 조용기 목사님
-언론이 보도한 조용기 목사님, 에포크 타임스, 2021년 9월 15일
조 목사는 지난해 7월 뇌출혈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입원 치료를 해왔습니다.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부인 고 김성혜 한세대 총장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조 목사는 1958년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설립한 천막교회를 지금의 교인 수 80만여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교회로 키워내며 선교의 신화를 쓴 인물입니다.
한국 1~2위 다투는 두 후보, 한 시간 차로 빈소 찾아 조문했습니다. 국민의힘 1차 컷오프 8명 통과…16일부터 TV 토론회, 1980~2010년대 초반 당시 한국 기독교 우파의 상징 격 인물로 꼽혔습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이 15일 여의도순복음교회 고(故) 조용기 원로목사 빈소를 방문했습니다.국민의힘 대선주자 지지율 1~2위를 다투며 서로에 대한 견제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두 후보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 한 시간 차이로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쳤습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인 홍준표 의원이 15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마련된 고(故) 조용기 목사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습니다.
홍 의원은 “조용기 목사님은 개신교의 가장 큰 어른 중 한 명이시고 편안하게 하나님 곁으로 가실 것”이라며 추모의 말을 남겼습니다.
윤 전 총장은 “조용기 목사님의 편안한 안식을 기도하겠다”라고 짤막한 추도사를 했습니다.
한편 홍 의원은 15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전 총장을 겨냥한 경고성 글을 남겼습니다. [출처] 에포크 타임스 한글판 - Kr.TheEpochTimes.com
-이렇게 조용기 목사님의 한국 보수계의 대표로 시대의 어른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개인적 조용기 목사님
필자도 서울에서 자랐지만, 집적 조용기 목사님이나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안타깝게도 한 번도 간 적은 없었습니다. 유년시설, 아침 공영 채널에서, 가끔 조용기 목사님이 조용히 설교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해 축복 기도하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학창 시절 교회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여의도에 가면, 큰 체육관 같은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이 '여의로 순복음 교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새삼 많이 놀랐었습니다.
필자도 불교집안에서 자라다, 고1 성당에 다니다, 재수 시절 언니를 따라 당시 한국의 유명한 옥한흠 목사님이 계신 '사랑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부도 출석하면서, 초신자로 신앙의 기본과 말씀 위주 제자훈련을 받으며, 바쁜 사랑의 교외 대학부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후, 미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집에서 가까운 큰 미국 교회 'Assembly of God' 미국 순복음교회를 참여하면서, 담임 목사님이 조용기 목사님의 저서를 여러 권읽었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조용기 목사님'과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현재 미국인 남편도 필자를 만나기전에 조용기 목사님의 책을 여러권 읽었을 정도입니다.
미국 교회의 순복음교회의 원조격인 'Assembly of God' 미국 교인들의 대부분이 사람이 참 친절했고, 예배시간 다른 교회보다 말씀과 찬양이 엄청 길고, 장로님들이 힐링 치료기 도도 열심히 해주어서, 예배도 자주 있어서 좋았습니다.
미국 생활이 유학생활이나 이민 건강이 힘들 때, 늘 기도받을 시간을 주어서, 예배 끝 시간에 기도 요청을 하면, 미국인 장로님들이 열심히 진심 어린 기도 해 주셔서, 기도 응답을 많이 받고, 몸도 치료받고, 힘들 때가 있을 때마다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 장로교회나 침례교회 예배 순서에 없는, 기도 부탁 시간에 이런 기도 시간이 너무나 좋습니다.
한 번은 미국 미조리 브랜슨 관광지에 갔다가, 미국 순복음교회의 탄생 지역인 미조리에서 주일이 , 큰 "James' Liver Church"에 방문하고 예배를 참석했었는데, 미국인 젊은 사람들도 많고, 예배도 좋았는데, 담임 목사님이 설교 일화 중, 남미 집회에서 만난 조용기 목사님의 일화를 집적 들었습니다.
미국 유학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조용기 목사님이지만, 영어 회화 실력이 굉장히 유창하기도 유명하는데, 미국 목사님이 그 집회에서 아픈 병자를 직접 치료하는 장면을 옆에서 보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만큼 조용기 목사님은 해외에서도 목사님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해외 집회를 가면, 대통령들이 집접 만나로 오고, 힐링 치료 집회에 소문이 많이 나서, 이동할 수가 없어서, 직접 헬리콥터를 타고 집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개인적으로 조용기 목사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마 5년전쯤 된것 같습니다. 미국 직장을 다니면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테크니션으로 발 통증이 시작되어 6주 병가 휴가를 받고, 잠시 쉬고 있을 때, 마음이 실망되고 절망 어릴 때, 조용기 목사님 설교를 유튜브로 하루에 하나씩 들으면서,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 냈습니다. 후일 미국 직장에 잘 복귀해서 일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뜨거운 순복음 교회 목사님 이셔서, 말씀 굉장히 감성에 호소할 줄 알 알는데, 기대와 다르게 차분하시면서, 기독교적인 지식과 역사적인 배경 설명과 차근차근 설명하기는데 놀랐고 듣기에 좋았습니다. 또한 그분은 매일 3시간쯤 기도하시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또한, 조용기 목사님은 제가 사는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툴사에 미국에서 한세기 유명한 Oral Roberts 목사님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조 목사님 본인도 죽을 만큼 일제 강정기와 6.25 전쟁을 겪으시면서, 아픈 시절을 보내셔서, 환자들에게 대한 애틋함으로 열심히 성령 치료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어려운 한국 시민들에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손수 돌보 시기도 하고,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많이 주셔서' 많은 호응을 받은 것 같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사역과 함께 하셨습니다.
또한, 한 세기의 성자로 불린, 존경받던 장로교회 옥한흠 목사님이나 하용조 목사님 만큼, 당시 한국에 유명한 분이셨는데, 아쉽게 개인적 한 번도 뵌 적이 없어서 조금은 아쉽습니다. 4년 전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국에서 제일 큰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가고 싶었는데, 교통편도 찾기 어렵고 일정도 바빠서 아쉽게 방문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2년 정도 순복음교회에서 발행한 '플러스 인생'을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지금도 발행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인상적인 일은 복음주의 목사님인 옥한흠 목사님이 말년에 조용기 목사님을 사랑의 교회에 초청하여, 3일 말씀 집회한 것이 새로왔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그 유튜브 비디오를 보면서 조용기 목사님의 인생과 말씀 철학과 성령론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한인교회는 장로교회, 미국 교회는 대표적 말씀공부를 잘하는 침례교회에도 참석했고, 몇 년 동안 한인 순복음교회도 참석을 했지만, 서로 교파가 달라 조금씩 다르고 장단점이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믿음으로 살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늘 이웃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가 장애인이든, 여성이든, 소수민족이든 소중하게 다루라.'는 중요 핵심 기독교적 교리가 이 힘든 세대와 전체주의로 다가가는 세대에, 더욱 소중한 것 같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믿고 가치관에 따라 정말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을 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더욱 느낍니다.그래서 이시대에 기독교의 가치관이 더욱 필요한것 같습니다.
아무튼 한국의 한 세기를 함께한 훌륭한 어른이 계셔서, 감사했고, 조용기 목사님을 기억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함께해 주셔서요. 타향에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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