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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정보

교민으로써,"미국의 2번째 도시, 로스앤젤레스, LA에 대해 다 알아 보겠습니다."LA집값, 아파트 가격과 교육등

by 러블리 랠리 2021. 9. 5.



"Q1.LA는 어떤 도시일까요?"

"Q2. 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할까요?"

"Q3. 요즘의 LA는 살기 어떤 가요?"

 



"그럼, 교민으로써
미국에 오래 살면서,
보고, 들은 위주로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프롤로그

요즘 미국 이주와 이민에 관심이 많으실 시기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멋진 캘리포니아 해변과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의 도시 로스앤젤레스, Los Angeles (LA)에 관심이 제일 많으실 것입니다. 과거의 골드러시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변화와 교민들이 살기 어떤지 역사와 함께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LA 위치, 인구, 면적

로스앤젤레스, 영어로 Los Angeles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1290.6 km²입니다. 2019년 미국 인구조사를 기준으로 396.7만 명의 인구 가 거주하고 있어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며 미국 전체에서는 뉴욕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가장 많습니다.


로스앤젤레스는 약 1,8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로스앤젤레스 대도시권의 중심지로, 이 대도시권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크며, 세계에서 가장 큰 대도시권 중 한 곳이며 세계의 온 민족이 몰려드는 도시입니다. 불법 이민자도 받아 들어 샌추에어리 시티라고 해서, 불법 이민자가 많아, 현재 굉장한 위험한 도시중 하나입니다.


설립은 1781년 9월 4일, 날씨는 : 기온 81°F (27°C)이며 봄가을 날씨로 쾌척하다고 합니다. 시장은 민주당 에릭 가세티로 지금은 팬데믹 시 강력한 락다운으로 3/1의 영세업자를 영구 폐쇄하게 해서 리콜 선거 중입니다.





■ LA 역사


포르투갈 출신 탐험가 로드리게스 카브리요는 1542년 스페인 제국 하에 캘리포니아 남부를 발견했습니다.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와 프란치스코회 선교사 후안 크레스피는 1769년 8월 2일 현재의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이르렀습니다.로스앤젤레스는 1781년 9월 4일 스페인 총독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1821년 멕시코 독립 전쟁이 일어나면서 멕시코에 편입되었습니다. 1848년 멕시코-미국 전쟁의 결과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맺으면서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지역을 미국에 양도되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는 1850년 4월 4일 지방자치제를 시작했고, 5달 후 캘리포니아 연방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많은 웨스턴 영화들이 동부에서 서부로 캘리포니아 이주하는 오래된 명화들이 매우 많습니다. 초기 정착민들은 영어로 "로스앤젤레스 강에서 온 천사의 여왕 성모 마리아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도시는 80개가 넘는 구역과 주변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932년과 1984년에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이며, 2028년에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 LA 경제


천사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로스앤젤레스는 사업, 국제 무역, 엔터테인먼트, 문화, 미디어, 패션, 과학, 스포츠, 기술, 교육의 중심 도시로, 세계 도시 순위 6위, 세계 파워 도시 순위 13위에 올랐습니다.


도시에는 문화, 경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 기업 본사들이 밀집해 있어 미국 내 가장 중요한 경제 도시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할리우드는 텔레비전 제작, 비디오 게임, 음악 산업에 있어 세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영화 제작 산업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1910년 할리우드가 로스앤젤레스에 합병되었고, 도시에는 이미 적어도 10개의 영화 회사가 운영되었고, 1921년 L.A. 는 세계 영화 산업의 80%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1930년 도시의 인구는 100만 명을 넘겼습니다. 오클라호마주와 미국 중부에 가뭄으로 많은 이주민이 캘리포니아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소설 '분노의 포도'표지


유명한 소설 '분노의 포도'의 책이 이때 오클라호마 이주민이 캘리포니아 포도 따는 노동자의 어려움을 나타 냈습니다. 캘리포니아주는 거대 포도산업과 오렌지 생산과 와이어니와 많은 농업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1969년 로스앤젤레스는 인터넷의 발생지 중 한 곳으로, 멘로파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으로 아파 넷을 개발했습니다.이후,실피콘벨리가 시작했습니다. 높은 세금과 가족 규제로 집값이 싼 지금은 많은 IT기업이 텍사스 오스틴으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포춘 500 순위에 든 기업 중 여섯 개가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여섯 개의 기업은 자원 기업 옥시덴탈 페트롤리움, 건강보험 회사 헬스 넷, 금속 배급회사 릴라이언스 스틸 엔 알루미늄, 기술 컨설팅회사 AECOM, 부동산 회사 CBRE 그룹, 건설사 튜터페리니등이 있으나, 기업 세금이 높아지고 락다운이 장기화되자 많은 기억들이 텍사스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테슬라가 있습니다.





■ LA 지질과 기후

로스앤젤레스는 아열대, 지중해성 기후 ,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라 해안 지역은 띠고 있고, 연강수량이 충분하기, 로스앤젤레스는 거의 일 년 내내 맑기 때문에 매년 강수량을 측정할 수 있는 날은 평균 35일뿐이라고 합니다. 비는 겨울이나 봄에 주로 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우 건조해서 산불이 매년 대형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매년 방대한 산불로 농업을 하는 분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도시에 사시는 분들은 대체로 공기가 매우 안 좋을 때가 많다고 합니다.


로스앤젤레스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진이 자주 발생합니다. 지질의 불안정은 많은 단층을 만들어내고, 거의 매년 10,000번의 지진이 일어납니다. 1994년 강도 6.7의 노스리지 지진으로 125억 달러의 재산피해와 72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때도 없이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비치와 팜트리가 유명합니다.




■ LA 문화

로스앤젤레스는 문명의 역사상 그 어떤 도시보다 예술가, 작가, 영화 제작자, 배우, 댄서, 음악가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로스앤젤레스는 할리우드의 고향으로, 세계적으로 영화산업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산업의 중심지라는 증거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하고,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상이 매년 이곳에서 열립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캘리포니아 배경이고, 배경이 늘 익숙합니다.

로스앤젤레스는 USC 영화예술학교가 있는 곳으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 학교이며 로스앤젤레스 군에는 841개가 넘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있습니다. UCLA와 주립대도 유명합니다. 디지니랜드도 유명하나, 얼마전 안좋은 기사도 많이 나왔습니다.





■ LA 인구

LA인구는 2000년에는 3,694,820명이었으며, 2006년에는 약 3,849,478명으로 늘어났다. 2005와 2007년 사이 미국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백인은 로스앤젤레스 인구의 48.7%이고, 흑인은 9.9%, 인디언은 0.5%, 아시아계 미국인은 10.6%입니다. 그리고 히스패닉과의 혼혈이 인구의 48.5%를 차지했다. 현재는 백인이 미국 중소도시로 이주 많이 하고 있고, 아시안과 라틴계가 증가한다고 합니다.중국에서 온 중국인들도 증가 추세입니다.

약 380만 인구 가운데 ‘백만장자’ 만도 약 25만 명에 이지만 로스앤젤레스 일대에서만 노숙자가 10만 명입니다. 그래서 노숙자 문제는 LA에 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인 유학생이 LA에 놀러 갔다가, 노숙자에 의해 큰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LA에 노숙자가 높은 이유는 높은 집값과 임금은 잘 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팬데믹으로 더욱 LA에 노숙자가 많이 늘었다고  하며, 주지사의 강력한 조치로 자영업자들이 팬데믹 이후 3/1이 폐업했다고 합니다.

 

최근,미국교민이 많이 보는 LA중앙일보에서 2021/10/08에 의하면 'LA한인타운이 노숙자의 거리가 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내용은 LA시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노숙자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지적입니다.온라인 매체 뉴스챈트는 7일 ‘한인타운의 위기, 노숙자 텐트촌으로 변한 LA지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이 매체는 “LA에서 심각할 정도로 증가하는 노숙자들은 이제 스키드로에 국한되지 않고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며  “텐트촌을 이루고 사는 노숙자들 때문에 지역 주민들과 비즈니스 업주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최근 LA에 한인 타운에 안타깝게 노숙자가 많이 늘고, 심지어 한인 젊은 부부까지 노숙자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주를 원하시는 분들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 LA 국제공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IATA: LAX, ICAO: KLAX이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은 2006년 6,100만 명의 이용객과 200만 톤 이상의 화물 처리를 했는데, 세계에서 6번째로 혼잡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3번째로 혼잡한 공항이지만, 공항 확장이 어렵고 대중교통이 다소 불편한 편이고, 유나이티드 항공의 허브 공항입니다.


개인적으로 LAX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환승이 매우 어려워서 짐을 한참 끌고 이동해야 했고, 별로 깨끗하지 않았고, 즐거운 기억은 아니였습니다.





■ LA 최근 이슈

LA에 엄청 많은 홈리스은 뉴욕 이상으로 유명합니다. 최근 뉴섬 주지사 리콜 선거 인터넷 다운 로드받아 투표 반는 등 이직도 이슈가 많습니다. 또한, LA서 백신 의무화 찬반 시위로 또 유혈충돌도 있었습니다.

LA가 교회 락다운 시키고, 깊은 좌파 이념 충돌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주말 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방역 조치를 놓고 백신 의무화 찬반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지난달에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념 싸움이 LA 한인타운 한복판에서 붙었습니다. 두 시위 모두 유혈충돌로 번지면서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고 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14일 LA 다운타운 시청 앞에 수백 명의 백신 의무화 반대 우파 시위대와 백신 의무화에 찬성하는 급진좌파 단체 안티파 이끈 시위대가 LA 다운타운 시청 앞에서 정면충돌했다고 합니다. LA에 대대적 인신매매 소탕 작정 2021년 1월 23일 기사 US news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극좌파 교육으로 부모님들이 매우 염려하여, 좀 더 보수적인 주를 이주를 하고 있습니다. LA학교는 1년 동안 학교 못 가고, 급 좌파 교육을 해서 불만이 많습니다.





■ LA 한인 타운, 코리아 타운의 시작


코리아타운, Koreatown / K-Town"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미국 최대의 코리아타운으로, 2008년 기준으로 약 124,281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한국이 인기가 많아지면서 더욱더 외국인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팬데믹으로 다들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코리아타운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53.5%인 라틴계입니다. 왜냐면 캘리포니아주가 불법 이민자를 가장 많이 받아들이기 때문이고 낮은 임금으로 한국인 비즈니스를 돕고 있습니다. 인종 구성은 아시아인은 32.2%, 백인 7.4%, 흑인은 4.8%, 기타 인종은 2%입니다.


캘리포니아의 한인 역사는 100년 정도로 역사가 깊습니다. 최초에 이민은 1882년에 조선과 미국은 1882년 다소 불평등한 조약인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여 교류가 시작되어 1880년대 후반 조선과 미국과 외교 관계 수립은 조선의 하와이로의 이민의 길을 열렸습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 이민자들은 로스앤젤레스로 향하기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민족 교회를 기반으로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인의 수가 수백 명으로 증가함에 따라 그들의 주거 및 상업 활동은 로스앤젤레스 비즈니스 지구의 남서쪽 구석으로 퍼져서 리틀 도쿄와 차이나 타운에 가까운 위치에 형성했습니다.

1900년대 초반 한국인들은 로스앤젤레스 벙커 힐 다운타운 주변에 모여들었고, 이 주택 분리는 인종 차별 법으로 인해 인종 차별, 저소득 지역으로 제한되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약 650명의 한국인이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했다. 그들은 주로 야채와 과일 배급에 중점을 둔 사업체뿐만 아니라 교회, 식당 및 지역 사회단체를 설립했습니다.

1936년에 한국 최대의 이민 정치 단체 중 하나인 한국 국립 협회는 정치, 문화, 교육 및 종교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중앙 본부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옮겼습니다.

1960년대 후반, 주변 지역은 가파른 경제 쇠퇴를 시작했습니다. 한때 화려한 윌리엄 중부 지역은 부유한 한국 이민자들을 끌어들이는 빈 상업 공간과 사무실 공간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올림픽대로와 8번가 지역의 대부분의 기업은 한국인이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제 호황은 한국의 언론 매체와 지역 사회단체의 창설로 이어졌으며 이 단체는 인근의 공동 정체성을 개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쳐 조성되었고, 이곳에는 한국 식당, 한국 상품을 판매하는 슈퍼마켓, 한국기업 및 은행을 비롯한 여러 한국인 관련 업소가 있습니다.

1980년에는 코리아타운 인근이 공식적으로 로스앤젤레스에 의해 지정되었다.

주민들은 1982년에 첫 번째 코리아 타운 사인을 설치하기 위해 성공적으로 로비를 했습니다. 소수 민족 영토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국 공동체의 주요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으며, 올림픽대로 북쪽 지역은 주로 흰 교외에서 아시아 거주민을 위한 집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 지역은 한인 커뮤니티의 주류가 되었고 코리아타운의 경계를 설정했습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4월 29일에는 인종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는데, 경찰청 경찰관의 로드니 킹의 구타 동영상 사건이 시미벨리 배심원단들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LA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폭동 당시 흑인과 한국계 미국인은 인종 투쟁에 직면했습니다. 많은 흑인 지역에서 한국 국민은 대다수의 사업체를 소유했습니다. 백인 주민들이 이 지역을 떠났을 때 한국인들은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사업을 구매했습니다. 일주일 동안의 폭동은 코리아타운의 많은 부분을 파괴했습니다. LA에서 5000만 달러 상당의 피해가 있었고 그중 절반은 한국 소유 기업의 것이었습니다. 폭동 속에서 코리아 타운과 안전한 동네 사이의 도로가 막혔습니다,

한국계 미국인들은 경찰이 이들을 보호하지 않고 응급 구조대원들은 도움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여파로 실망하여 LA를 떠난 분들도 계십니다.


2008년 말 로스앤젤레스는 코리아 타운을 특별한 그래픽 지구로 지정했습니다. 코리아타운에는 라틴계가 다수 있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계 고객 또는 한국 상점 소유자와 한국어를 사용하는 식당 및 식료품 점에서 라틴계 직원을 종종 찾는다고 합니다.


코리아타운은 미국에서 가장 밀집된 지역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코리안 타운에 가보신 분들은 생각보다 낙후되어서, 많이 실망을 많이 하시기도 합니다. 한인들은 로스앤젤레스보다 낮으며 소득이 2만 달러 미만인 가구의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하지만, 경제 기반을 잘 잡은 한인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비지니스도 아주 잘 되었다고 합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코리아타운에 영업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주 로스앤젤레스 대한민국 총영사관도 위치하고 있습니다.로스앤젤레스 대한민국 총영사관 주소,3243 Wilshire Blvd, Los Angeles, CA 90010 입니다.




■ LA 집값과 아파트 가격


LA 집값은 미국 전국 집값, 뉴욕, 샌프란시스코, 다음으로 높습니다. 2021년 LA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기사에 의하면, LA 중간 가격이 72만, 8억 정도라고 합니다. 작년과 올해 LA와 오랜치 카운티 집값 크게 상승했다고 합니다.임금은 타주와 많은 차이가 많이 나지 안는데, 집값이 매우 올라 서민들이 매우 힘들어 합니다.


캘리포니아 중간 집값은 81만이라고 하니, 한화로 8억이 훨씬 높습니다. LA 집값이 30% 상승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LA는 미친 집값에 3만 달러 3000만 원 이상 웃돈 거래는 기본이라고 합니다. 또한, 매물 부족으로 구매 경쟁이 격화되었다고 합니다.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까지 이어지리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뉴욕과 LA는 두 곳 모두 최저임금이 지금은 거의 시간당 15불에 가깝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LA 8 ~ 10불 , 뉴욕 12 ~13불 정도로 차이가 있어 최저 임금은 낮은데, LA와 뉴욕은 높은 아파트 비를 나타납니다.


뉴욕 아파트는 보통 3500 정도의 내야 된다고 해야 합니다. LA 아파트 가격은 방 2개를 기준으로 한다면 가격이 어느 아파트 인가에 따라서 많이 다르게 되는데 보통 가장 저렴한 곳이 1600불부터 약 2500불 까지 합니다. 약 한화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입니다. 매달 내여야 아파트 렌트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격이 높을수록 콘도와 비슷한 수준이고 가격이 적은 곳은 일반 조금 오래된 아파트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임대, 분양이 없고 렌트 이기 때문에 매달 일정액을 내어야 합니다. 높은 아파트 가격에 서민들의 고충이 높고, 직업을 잃으면 자칫 홈리스가 되기 쉽습니다.


제가 사는 오클라호마 주와 비교하면 미국 중남부 좋은 아파트 900불 100만 원 정도이니, 아파트가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습니다. 오클라호마 주택은 2 억정 도면 서민이 살만합니다.그러니, LA 집값과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습니다.

 





■ LA 인구 유출, 오클라호마 주민으로서 느끼는 캘리포니아 이주민


캘리포니아인들이 최근 '탈캘리포니아'로 가까운, 네바다나 뉴멕시코 유타와 콜로라도 주도 이주 많이 하였습니다. 또한 "가자 오클라호마로!" 캘리포니아를 '탈출' 오클라호마에 둥지를 트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USA 투데이 신문은 지난 약 10년 동안 캘리포니아에서 오클라호마로 인구 순 유출이 2만 1000명에 이른다고 최근 보도했습니다.


최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이웃도 캘리포니아주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또한 오클라호마 새 주택단지에 가면, 캘리포니아주에서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한인교회에서 만난 분도 캘리포니아 살았을 때, 총기 위협을 가까이 받고 오클라호마 주로 이주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클라호마주에 20년 전에 이 주 후 사업체를 잘 운영하시면, 내 집 마련과 만족하게 사시고 계십니다.



과거 오클라호마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적인 인구 유출 지역이었습니다. 가뭄과 흉작으로 점철됐던 1930년대를 기점으로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다른 주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아서 캘리포니아 '오키'패스티발도 현재에도 남아 있지만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오클라호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텍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텍사스에 달라스,어스틴와 휴스턴은 대포적 캘리포니아인 이주 도시입니다. 하지만, 보수주인 텍사스인들은 좌파 성향을 갖은 캘리포니아인들을 달갑게 맞고 있지는 않습니다. 캘리포니아 서민들이 안전하고, 내 집 마련과 비즈니스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오클라호마와 텍사스의 유입은 막을 수는 없습니다.


몇 년 동안 캘리포니아에서 오클라호마/텍사스로 옮겨가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 회사 직원들을 중심으로 수백 명 이상의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단체 이주'가 확정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유는 텍사스 오클라호마는 다른 주처럼 심한 경기 침체를 겪지도 않았고 또 이런 이유로 좀 더 빨리 경기가 회복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중남부는 상당수 주에서 주택 가격에 거품이 낄 때 이곳에서는 부동산 붐의 기미조차 없었고, 항상 새집들을 짓고 있습니다. 또한 에너지 가격도 항상 안정적인 편에 속하고 한 오클라호마 시티의 단독 주택 중간 가격 은 20만 달러로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 LA의 72만 달러에 비하면 절반도 못 되는 수준입니다. 옆에 알칸서주도 캘리포니아 인구가 많이 늘고 있습니다.



CNBC 방송은 최근 오클라호마를 미국에서 생활비가 가장 적게 드는 주로 선정했었는데. 삶의 질과 교육 여건은 각각 41위와 40위에 랭크했다. 오클라호마는 미국의 대도시 가운데 최근 경제가 가장 좋은 축에 든다는 텍사스의 댈러스와 인접해 있다. 자동차로 불과 3시간 거리입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캘리포니아 인들은 달라스 집 관광 투어를 버스를 대절해서, 대규모 젊은 층이 이주하고 있어, 캘리포니아는 인구 감소로 의원수가 감소하고, 텍사스가 의원수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현재는 달라스 코리안 타운이 캘리포니아 LA보다 더 세련되고, 멋지다고들 합니다.



지금까지 미국의 2대 도시인 LA에 대해서 한국 교민의 역사와 경제 등 최근 상황까지 알아보았습니다. 한국인들이 아직 많이 거주하시는 도시라 조금은 조심스러웠습니다. 남동생도 몇 년 LA에 살았었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록하였으나, 혹시 첨가할 내용과 수정할 것이 있으면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사는 돌고 돕니다.'미국 이주와 이민이 관심이 많은 시기, 올바른 정보를 갖고, 안전하고, 좋은 주에서 새로운 출발을 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앞으로도 미국에 살면서, 필요한 미국 정보와 지식들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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