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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정보

미국 애국가 '스타 스팽글스 배너'기원과, 미국 다른 애창곡 '아메리카 더 뷰티풀'송의 이야기 알려 드립니다.

by 러블리 랠리 2021. 10. 16.

미국 스포츠 시작 전에 관중과 스페셜 게스트가 미국 애국가를 일반적으로 함께 부르기도 합니다.♪♬♪♥

https://youtu.be/OUwwkoI0tJ0



또한, 다른 특별한 날에 올림픽 같은 데에서도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애국가인 '스타 스팽글스 배너'에 노래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나중에 미국 시민권 시험을 볼 때, 미국 애국가 가사와 부를지 알면 좋습니다. 이민 시험관이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미국 애국가의 기원을 간단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간략한 역사



1607년에 시작되는 영국 이주민이 차츰 세력 범위를 넓혀 영국은 1733년까지 13개 식민지를 대서양 연안에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주민들의 이민 동기가 남북 간에 크게 달랐습니다. 미북 부지 역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나왔고 남 부는 경제적인 부를 쫓아온 투자 이민이 다수를 이루었습니다.

유럽의 7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이긴 영국이 식민지의 통제를 강화하자 13개 식민지가 조지 워싱턴을 중심으로 결속, 궐기하고 프랑스의 원조를 받아 대영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미국을 수립한 것이 국가로서 미국의 시초였습니다.

미국은 1776년 7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프랑스의 지원에 힘입어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습니다.

이어서 1787년에 미합중국 헌법이 발포되고, 1789년에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지도 아래 연방국가가 발족하였습니다.

스타 팽글 배너 노래가 1931년 3월 미국 국가 노래로 선포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애국가, '스타 스팽글스 배너 '기원 와, 1931년 3월 미국 송 국가 선포


스타 스팽글드스 배너가 유명한 미국 애국가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 미국 한국 교민인 필자도 궁금하였습니다. 미국에 오래 사니, 한국의 애국가처럼, 가슴이 저리고, 절절한 가사입니다.

미국 국가는 미국이 독립한 지 38년 후인 1814년, 프랜시스 스콧 키에 의해 작사되었습니다. 미국과 영국 간의 1812년 전쟁 중에 포로가 되어 영국 군함에 억류되어 있단 의사 윌리엄 빈스의 석방을 교섭하기 위해 워싱턴 DC의 변호사 프랜시스 스콧 키와 잔 S. 스키너가 당시의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의 특별 허가를 받아 체사피크만에 정박해 있던 영국 군함으로 향했습니다.

영국군은 빈스의 석방을 허락하였으나 볼티모어시를 방어하고 있던 포트 맥 헨리를 공격할 계획이었으므로 이 사실이 누설될 것을 우려하여 공격이 끝날 때까지 세 사람을 군함에 억류시켰습니다.

영국 군함의 포트 맥 헨리 포격은 1814년 9월 13일(화요일)에 시작되어 그날 밤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프랜시스 키와 그의 친구들은 포트 맥 헨리가 아무런 방어책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초조해하며 갑판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연기와 안개가 너무나 자욱하여 새벽녘 동이 틀 부별까지도 이번 전투에서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 파악할 수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침 7시경, 안개가 걷히고 주위가 한해 지면서 저 멀리 요새 벽에서 너풀거리는 성조기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랜시스 키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그의 감격스러운 마을을 표현하고픈 욕구가 치솟았습니다. 얼른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어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치열한 전투를 치른 후에도 자랑스럽게 휘날리는 넓은 줄과 밝은 별들... 자유의 땅, 용기의 터전 위에 성조기는 아직도 휘날리고 있다."

불과 몇 분 후에 오늘날 전 미국인이 엄숙히 부르는 미국 국가의 가사가 이렇게 하여 완성된 것입니다. 이날 오후, 영국군은 세 미국인을 풀어 주었고 키는 볼티모어로 돌아와 시의 연을 완성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이 시가 광고지에 인쇄되어 전 시가지에 뿌려졌다. 며칠 후 배우 퍼디낸드 다랭이 옛 영국의 축배 송 '천국의 어내크리언'의 곡에 이 시를 붙여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곡의 멜로디는 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1700년대에 군대의 행진곡으로 이용되었으며 그 후 정치적 노래인 '애덤스 앤드리버티'의 멜로디였기 때문입니다. 프랜시스 키라 작사한 '스타-스팽글드 배너'는 그 후 미국인들, 특히 육 군화 해군에서 국가처럼 애창되었으며, 마침내 1931년 3월, 의회가 이 노래를 미국 국가로 공식 선포하였습니다.




★미국 다른 애창곡 '아메리카 더 뷰티풀'


미국 다른 애창곡 '아메리카 더 뷰티풀'을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날 미국인들 사이에서 미국 애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보다 더 널리 애창되는 '아메리카 더 뷰티풀'은 뉴저지의 교회 오르간 반주자, 뉴잉글랜드의 시인, 아름다운 콜로라도 산맥의 절경이 만들어낸 합창품이었습니다.

작사가 캐서린 리 베이츠는 1859년 매사추세츠 펠머스 태생으로 웨슬리대학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1890년대 초, 콜로라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인근의 로키산맥 파익스 픽, 해발 1만 4천1백10피트 정상에 올랐을 때 내려다 보이는 장관에 감격한 베이츠'O Beautiful for Spacious'로 시작되는 시를 읊었습니다.

'미국 국가'선정 주장도 많아 완성된 시는 1895년 7월 4일, 보스턴에서 인쇄되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시가 기존 노래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져 불리는 것은 아주 흔한 일, 캐서린 베이츠의 시에 곧바로 찬송가 '메이터나'는 이미 13년 전에 작곡된 노래로 작곡가는 뉴저지 뉴왁의 교회 오르가니스트요 성가대 지휘자였던 새뮤얼 A. 워드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미국인이라며, 애창되는 '아메리카 더 뷰티풀'이 완성되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미국에 오래 살면, 더 익숙해지는 이곡들 신대륙 미대륙을 사랑하고, 미국 시민이 되면서 들으면 더욱 감격스러운 곡들입니다.물론 한국 애국가를 들어도 눈물이 나옵니다.

아마도 태어나고, 자라고 사는 곳에 따라 옛 조국과 새 조국에서 이런 곡들을 들으며, 더욱 미국민으로써 감동이 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 오시길 바라거나, 공부하시거나, 사시는 분들도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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